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7군자 체포 사건 (문단 편집) === 7군자의 체포 === 1936년 11월 8일, 상하이의 일본인 방적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항의 파업을 실시하였다. 11월 12일, 구국회의 [[선쥔루]], [[장나이치]], [[왕자오스]] 등과 구국회 회원 700여명이 상하이 정안사로에 위치한 교회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여기에 파업 노동자 대표들이 참가하여 파업 지원을 요구하였고 황흥로에서 파업 중이던 노동자 2천명 역시 집회를 열어 파업 경과에 대해 보고하였다. 뒤이어 선쥔루와 [[스량]]이 이 집회에 출석해, 일치항일을 위해 내전을 정지해야 하며 홍군에 대한 토벌을 중지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푸쭤이가 백령묘를 점령한 11월 23일, 국민정부 당국은 구국회 지도자 7인에 대한 체포령을 하달, 이들을 전격 체포하였다. 체포된 멤버는 다음과 같다. * [[선쥔루]]: 61세, 상하이 변호사회 회장. * [[장나이치]]: 42세, 은행가, 금융이론가. * [[쩌우타오펀]]: 40세, 잡지 발행자. * [[왕자오스]]: 33세, 변호사. * [[리궁푸]]: 35세, 학교장. * [[샤첸리]]: 33세, 변호사. * [[스량]]: 28세, 변호사, 여성. 이중에서 스량은 얼마 안가서 석방되었으나 나머지 6명은 위해민국 긴급치죄법에 의거, '비합법 단체를 조직하여 적비와 결탁하거나 파업, 동맹휴교, 불매운동을 선동하고 은밀하게 치안의 요란을 계획하여 정부의 전복을 기도한 죄'로 수감되었다. 또한 항일을 주장하던 14종의 간행물이 폐간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